
Novel
🎊 What a suprise 🎊
BY. 오란비 @winter_inbloom 2020.09.06
코너는 9월을 앞두고 제법 익숙해진 직장 동료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 가장 가지고 싶었던 물품은 무엇입니까?’
그 설문은 심지어 반 년 전 증거보관실 안에서 주먹다짐을 한 후 전혀 관계 개선이 되지 않고 자기 얼굴만 보면 이를 바득바득 가는 개빈 리드에게까지 꼬박꼬박 이어졌다. 반응이 좋을 리 없지만 코너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표본조사(직업이 같으니까!)를 얻으려 했을 뿐이다.
“왜, 뇌물이라도 보내놓으면 깡통 수명을 더 늘려줄까봐?”
별 소용없긴 했지만. 개빈 리드는 하여간 코너가 원하는 답변을 해주지 않기로 작정한 인간이었다. 답변에 가장 신뢰도가 높을 제프리 파울러 역시 빤히 코너를 노려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나갈 때 문이나 잘 닫아.”
또한 코너는 DPD 내부의 표본조사 뿐만 아니라 쇼핑몰을 돌아다니면서 행크 앤더슨의 나잇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이 무엇인지 검색했다. 구입 후의 만족도를 검색해보며, 실제 행크 앤더슨에게 필요한 지 아닌지 계산해보는 일은 종종 그를 깊은 생각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지표란 무엇이고 취향이란 무엇인가? 즉, 행크 앤더슨의 생일 선물로 무엇이 가장 좋은가?
그리고 종합해본 결과 무슨 선물을 하려든 우선 자신의 마음에 차는 것으로 고르자면, 코너의 쬐꼬만한 안드로이드 월급으로는 택도 없다는 사실까지 깨닫고야 말았다. 화폐 경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얼마나’ 중요한지는 체감해보지 못했다고 할까. 지금까지 그의 대부분 월급은 스모와 행크의 운동과 식생활 개선에 들어갔고, 한 번도 아까워해본 적 없지만 결과적으로 현재 코너는 선물을 살 돈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행크의 생일이 지나고 나서야 월급날이 있다.
돈은 왜 그렇게 중요한 걸까? 시무룩해졌던 코너는 돈 안 드는 선물에 대해 검색했다가 통렬한 타격을 입었다.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보호자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어린아이라면 모를까, 구애를 빈손으로 하는 종은 단언컨대 없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주제에 강한 수컷인 척 뽐내는 사기꾼이 아니라면. 자연의 세계는 진지하고 인간의 세계도 다를 바 없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쌩 사라지려는 코너를 행크가 어깨를 붙들어 세웠다.
“요새 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싸돌아다니냐? 무슨 일 있어?”
행크 앤더슨으로서는 드물게 떨리는 목소리가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대출은 왜 알아보는 건데?”
코너는 냉혹하게 그 걱정을 잘라냈다.
“필요한 게 있어서요. 아니, 제 검색 기록을 살펴보신 겁니까? 안드로이드에게도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니가 대출 어쩌구를 니 입으로 쭝얼거렸거든…….”
하여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행크는 눈살을 찌푸리고 코너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더 꽉 주어 끌어당겼다.
“인생 망치고 싶냐? 뭣 때문에 돈이 필요한 거냐고, 엉? 좆같은 이율로 대출 받으러 가느니 내가 빌려줄 수 있는 한도라면 도와줄 테니까.”
“경위님께 상담드릴 일은 아닙니다.”
눈을 내리깔고 하는 코너의 말에 행크의 가슴에 대못이 콱 박혔다. 마치 ‘당신과는 상관 없는데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아니,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제일 먼저 상담해야지! 개빈한테까지 뭐라고 물어봤으면서 왜 나한텐 상담을 안 하는 거야?
이제 행크 앤더슨과 코너가 전속 파트너는 아니고 사건에 따라 필요할 때 함께 일하곤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상담하기 좋은 상대다. 제프리 파울러보다도 낫지, 당연히.
만일 직장 관련이 아니고 다른 일이더라도 마찬가지로 행크 앤더슨은 최적의 상담 상대였다. 왜냐하면 행크는 자신있게 이 깡통로봇에게 가장 친한 사람은 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하고, 연애를 하고 있으며, 같은 집에서 살기까지 하니까!
“염병! 아니 그럼 대체 나 말고 상담할 누가 있는데?”
하지만 코너는 눈치만 살살 보더니 가봐야 할 장소가 있다며 DPD에서 쏙 빠져나갔다. 행크는 기가 찬 채로 그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돈을 쓰지 않고도 애인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고전적인 방법, 목에 리본을 매고 “선물은 저예요(하트)”도 배웠으나, 노스가 대번에 분노했다.
“그딴 혐오스러운 짓 하면서 안드로이드 인권을 통째로 가져다 버리지 마!”
코너는 항의했다.
“돈이 없어서 줄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단 말이야.”
노스가 눈과 입에서 거의 불을 뿜었다.
“네가 매매의 대상으로 하락하는 게 선물이라고? 행크 앤더슨이 널 가지고 뭘 해도 좋아할 거야?”
코너는 ‘선물은 저예요’ 이후에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행크가 원한다면 거부감 없이 할 수 있어.”
노스가 어두운 미소를 짓더니 과거 적나라한 에덴 클럽의 현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가 매매되던 산업의 어두운 부분이었다. 코너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차츰 무표정해지며 레드링을 돌리다가 마침내 자기 자신을 선물하는 일은 포기했다.
연인의 생일 선물로 날 가져요(하트)로 그런 비윤리적인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았고, 끽해봐야 세이프 워드를 미리 정해 두지 않으면 재미없는 일이나 벌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하여간 같이 듣고 있던 조쉬는 입을 다물었다. 조쉬도 그런 선물은 별로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럼 뭘 선물해야 하지?”
노스는 내 알바냐는 얼굴로 쳐다보았고, 조쉬가 어깨를 으쓱했다.
“마음이면 돼.”
“구애를 빈손으로 하는 종은 없어, 조쉬.”
“하지만 마음은 중요하잖아.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 최고야.”
“그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선물이 필요한 건데?”
지나가던 사이먼이 “마커스한테는 물어봤어?”라고 해서 코너는 마지막으로 마커스를 향했다.
마커스는 늘 그렇듯이 진지하게 경청해주다가 씩 웃었다.
“내 캔버스와 물감은 얼마든지 제공해줄 테니까, 초상화를 그려 주면 어때?”
코너는 난색을 표했다.
“결국 내가 그리면 현실의 복사에 불과해.”
“할 수 있어, 코너. 현실을 복제하는 게 아니라 해석하고 나아지게 하는 게 그림이지.”
코너는 자신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해석하고 나아지게 한다고? 그게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인데. 난 무언가를 나아지게 하는 기능은 없어, 이미 일어난 사건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지….”
“하하, 그런 기능을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안드로이드는 없어, 코너. 그냥 상상력을 발휘해.”
마커스는 당연하다는 듯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코너는 흰 캔버스 앞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을 ‘해석하고 나아지게 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없었다. 어렵지 않게 메모리에 저장된 모습 그대로 - 그 순간의 배경까지도 정확하게 - 모사해 놓을 수는 있었지만 그건 프린터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사이 LED 링은 내내 노란 빛으로 바쁘게 돌았다.
드디어 선물을 정했다는 소식에 친구들은 종종 얼굴을 내비쳤다. 조쉬는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했고, 노스도 적어도 네가 생각한 선물보다 마커스가 생각한 선물이 훨씬 낫다는 의견이었다. 코너 역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문제는 그거였다. 잘 되지 않는다는 것. 프린터처럼 자신의 메모리에서 금방이라도 꺼낸 듯이 생생하게 그려낼 수는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눈을 감고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무언가’를 힘겹게 포착해내 캔버스에 투사하던 코너는 다른 누군가의 인기척에 눈을 떴다. 사이먼이었다. 사이먼은 섬약하게 웃더니 코너가 그려낸 몇 점의 복사품과 거의 형태조차 없는 난해한 추상화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선물 받는 사람 주변을 잘 봐야 해, 코너. 어떤 것들이 그 사람 주변에 있는지. 추상화를 좋아하는지, 혹은 세밀화를 좋아하는지, 취향에 대한 단서는 분명히 그 주변에 있어.”
코너는 잠시 붓을 멈췄다. 서광이 비치는 듯 했다. 단서를 찾아 추리하는 일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코너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것이라면 상대방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는 증명과도 같지 않은가!
*
그러나 행크 앤더슨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사건 개요는 이렇다.
어느 날부터 인간 동료들에게 꾸준히 무언가 들추고 뒤지고 물어보며 돌아다니던 코너가 갑자기 대출이 어쩌고 중얼거리더니 그 날은 누굴 만나러 간 듯 아예 늦게 들어오질 않았다. 그 후에 태연한 척은 하는데 자꾸 자신을 촉촉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은근슬쩍 시선을 돌리며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만나러 나간다. 행크 앤더슨 형사 20년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새끼 뭔가 있다.’
법에 대해 완벽히 알고 있고 툭 건드리면 판례를 줄줄 뱉어내는 안드로이드라도 얼마든지 사기에 걸릴 수 있다. DPD로 찾아오는 수많은 피해 사례만 보아도 확신할 수 있다. 행크는 처음부터 강력 범죄와 마약반을 전전했기 때문에 그쪽 관련해서는 같은 직장에서 전해들은 정도에 불과해서 몰래 은근슬쩍 공부까지 시작했다. 코너가 징징 짜면서 말하는 순간 ‘나한테 미리 말했어야지, 이 깡통아!’하고 화내며 끝장나게 빠르게 해결해줄 요량이었다.
그 날도 노트북을 켜놓고 사례와 보고서를 쭉 보고 있는데, 조용한 도로에서 택시가 서는 소리가 났다.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행크는 보던 창을 부산하게 꺼버리고 아무 화면이나 띄워두었다.
현관 앞까지 규칙적이고 가벼운 발소리가 나자 스모도 하품을 하더니 몸을 일으켜 두 번째 가족을 맞이할 채비를 했다. 행크 앤더슨도 반사적으로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괘씸해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코너는 가볍게 문을 노크했다가 자기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행크. 안녕, 스모.”
“어딜 매일 그렇게 싸돌아다니냐?”
“뉴 제리코에 다녀온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행크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얹고 툴툴거렸다.
“매일 갈 일이 뭐가 있는데?”
“아, 이제 볼 일이 끝났으니까 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뉴 제리코로 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말을 하는 코너의 표정은 평소와 하나도 다를 바 없이 태연하다 못해 온화한 미소까지 짓고 있었고, LED 링 역시 평온히 천천히 돌았다. 하지만 행크 앤더슨은 코너가 얼마나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는 지 알고 있기 때문에 눈만 세모꼴로 떴다. 계약이라도 마무리 된 건가? 대출까지 할 만한 일이 뭐가 있어? 돈이 필요하면 빌려준다니까 코너가 행크에겐 상담할 일이 아니라며 딱 잘라버린 일까지, 그 모든 의혹과 의문과 불안함이 허리케인처럼 머리 안을 뒤집어 엎고 있어서 행크는 코너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네모난 무언가를 뒤늦게 발견했다. 판형이 큰 종이책이나 액자 정도의 크기였다.
“그건 뭐냐?”
“아, 이건….”
스모가 흰 천으로 깔끔하게 포장된 것에 고개를 들이밀고 킁킁거렸다. 행크도 몇 번 킁킁거렸다가 코너가 들고 있는 저것에서 어떤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코너가 들어오며 함께 한 바깥의 서늘한 밤의 공기에 묻혀 있다가 이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알 듯 말 듯한 냄새였다. 어딘가에서 맡아본 냄새이긴 했다. 페인트 통을 갓 땄을 때의 걸쭉한 냄새나 갓 인쇄한 신문에서 풍기던 잉크 냄새. 훨씬 희미하지만.
“시간이 가까워졌으니 미리 드리도록 하죠.”
코너가 포장된 선물을 새침하게 행크에게 내밀었다. 행크는 눈살을 찌푸렸다가 마지못해 받았다.
“무슨 시간이 가까워졌는데?”
“모르십니까?”
행크 앤더슨은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지만 무슨 시간이 가까워졌는지 생각해낼 수 없었다. 프로젝트 마감일? 대출 기한? 마감 기한? 병원 접수 날짜? 행크 앤더슨은 조금 슬퍼졌다. 이 새끼한테 뭔가 있는 게 틀림없는데, 그 ‘뭔가’가 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사기죄에 대해서 공부해왔던 것도 다 소용없는 거 아닌가, 요 깜찍한 녀석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어대며 솔직하게 불라고 으름장을 놓는 게 훨씬 빠른 것 아닌가…….
경찰답지 않은, 혹은 너무나 경찰다운 생각에 잠겨있던 행크에게 코너가 재촉했다.
“어서 풀어보세요.”
오히려 물건을 건넨 코너의 얼굴에 설레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스모도 자꾸 기웃거려서 행크는 일단 이걸 풀고 사정을 들은 다음에 멱살을 잡든 말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포장을 뜯었다.
행크는 포장을 무심하게 좍좍 뜯다가 아크릴 액자를 보고 잠시 멈췄다. 투명한 아크릴 액자는 작은 상자처럼 캔버스를 감싸고 있었고, 캔버스는 가로로 길었다. 행크는 똑바로 볼 수 있도록 액자를 고쳐잡았다.
캔버스에는 행크와 스모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기운찬 스모가 서서 행크를 향해 머리를 기울이고 있었고, 화려한 무늬의 푸른 소파에 편안히 앉은 행크는 부드러운 얼굴로 가까이 선 스모와 눈을 마주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는 장면이었다. 거기에는 코너가 행크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던 모든 물건들이 소품처럼 들어 있었지만, 물론 행크는 그걸 알지는 못했고 다만 감탄한 손길로 액자 위를 문질렀다.
“이게… 네가 그린 거냐?”
그림 속의 행크 앤더슨은 편안할 뿐만 아니라 힘마저 넘쳐 보였다. 반듯한 셔츠에 서스펜더와 넥타이일 뿐이었는데도 화려한 소품에 지지 않았고, 그 옆의 테이블에는 유화로 그렸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투명하게 빛나는 글라스도 있었다. 레옌데커마저 얼핏 떠올리게 하는 고전적인 섬세하고 화려한 스타일인데도 때때로 파격적으로 도드라지는 붓자국과 빛나는 색감.
예상치 못한 선물에 대한 놀라움까지 더해져, 행크는 이 그림에 마음을 빼앗겼다.
“마음에 드십니까?”
코너가 점잖게 물었다. 스모가 무거운 꼬리를 설렁설렁 흔들며 아크릴 액자를 들여다보았다가 자신이 대신 대답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왕왕거렸다. 행크는 무의식중에 웃다가 머쓱하게 입가와 수염을 매만졌다.
“마음에 든다.”
코너의 얼굴이 환해졌다. 마치 내부에서 달칵 빛이 켜진 것처럼.
“생일 선물로 가족을 그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행크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생일 선물?”
“네. 곧 생일을 맞으시지 않습니까.”
행크 앤더슨은 간신히 이제 9월 초이며 그래서 자신의 생일이 이 근처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이가 오십이 넘으면 그런 기념일에는 다소 초연해지게 된다. 그 이후에 더 강렬하게 기념해야 할 많은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그러나 코너에게는, 이 깜찍한 안드로이드에게는 그것이 이토록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이 단단하고 무뎌진 경위의 마음을 산산히 파헤쳐 물렁하고 보드랍게 만들었다. 열심히 싸돌아다니는 코너에게 소외되어 내심 쓸쓸했었는데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는 아이러니를 느끼며. 안드로이드는 아니었지만 행크 앤더슨은 그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경위님께 상담드릴 일이 아닙니다.’ 본인에게 뭐가 가지고 싶냐 물어볼 생각은 안 하고 다른 녀석들한테나 물어보고 말이지.
그러나 그 모든 일이 결국 자신을 위해서였다는 깨달음으로 몸의 안쪽에 나비 날개 같은 가볍고 보드라운 것으로 가득 차올라서 행크는 떨리는 폐에서 숨을 뱉었다.
“고맙다, 코너.”
“아, 이제 자정이 지났군요. 행크, 생일 축하드립니다.”
코너는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
행크는 손가락을 까딱거려 그를 불러들이곤 가까이 온 코너의 목을 한 팔로 감아 당겼다.
“이것 때문에 그렇게 여기저기 캐물어보고 다닌 거였군?”
코너가 뺨을 붙인 채로 웃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습니다.”
행크는 코너를 껴안은 팔에 힘을 더 주었다. 희미한 테레빈 유의 냄새는 코너에게서도 나고 있었다.
“대출 운운해서 헛걱정만 했잖아! 앞으론 깜짝 선물 금지야.”
“네.”
“그리고… 그리고 가족을 그렸다면, 그래, 거기엔 너도 있어야지.”
눈을 감고 있었으나, 코너의 LED 링이 부산하게 푸른색과 노란색으로 돌아가는 빛은 감은 눈꺼풀 안쪽에서도 보였다. 행크는 코너를 끌어안은 힘을 풀지 않고 기다렸다. 한참만에 코너가 속삭이듯 대답했다.
“저도 여기에 들어갈 수 있었군요.”
행크는 코너와 액자를 꽉 쥐어 품안으로 끌어당겼다.
“당연하지, 요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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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오란비 - 코너 앞에서는 아니라고 했지만 밤에는 목에 리본 매고 당신을 믿기 때문에 한다면서 '선물은 저예요' 할 겁니다. 모든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안드로이드.